제목 [홈페이지 개편 기념 리본(Re-Born) 특강] 영화감독 김태균
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19.02.22


20년 동안 뭐하셨어요?
“내가 니 같은 놈 이겨서 뭐하려고.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를 잃어버려도 몇날 며칠을 찾아 댕기는데. 니 손에 죽은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또 어디선가 구더기 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거 안타까워서. 내가 명색이 경찰이라는 게 쪽이 팔려서. 그래서 이러고 있는 거다, 임마.” <암수살인>에서 김형민이 연쇄살인마 강태오에게 한 말이다. <암수살인>의 주인공 김형민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태오의 범죄를 밝혀내기 위해 긴 시간 포기하지 않았듯 영화 <암수살인>을 만든 김태균 감독도 긴 세월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왔다. 지난 2월 12일 차기작을 준비중인 김태균 감독을 한겨레교육 누리집 개편 기념 리본(Re-Born) 특강에서 만났다.
군대 내무반서 본 <2001 이매진>, 나도 만들 수 있겠는데?
영화 전공이 아닌 김태균 감독. 그런 그가 처음 감독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곳은 군대였다. 1971년생인 김태균 감독이 군대서 내무반장이던 시절, 이제 군 제대를 앞두고 뭐해 먹고 살지 궁리만 하던 시절이었다. 당시에는 TV 채널권이 내무반장에게 있었다.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이었다. 후임들을 골려주려고 인기 그룹 룰라가 나오던 채널을 교육방송으로 바꿨다. 당연히 후임들은 하나 둘 밖으로 나갔고 후임들이 나가니까 스스로 채널을 바꾸기 귀찮았던 그가 보았던 게 교육방송의 '시네마천국'. 단편영화를 상영해주던 프로그램인 '시네마천국' 에서 마침 영화 <1987>을 만든 장준환 감독의 첫 단편영화였던 <2001 이매진>이 나오고 있었다. 당시 단편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그 영화를 보면서 김태균 감독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. “저게 영화라고? 나도 만들 수 있겠다!” 이후 그는 영화로 먹고 살 궁리를 시작했다.
사수이자 동료, 곽경택 감독과의 만남
김태균 감독은 막상 영화로 먹고 살기로 작정은 했지만 다시 또 영화전공으로 학교를 들어가기는 건 시간낭비라 느꼈다고 했다. 그러던 그가 발견한 게 ‘한겨레 영화제작 학교’다. 후에 그가 직접 강사를 하기도 했던 한겨레교육(옛 한겨레교육문화센터)과의 인연이 그때 시작됐다. 당시 한겨레 영화제작 학교에는 지금은 한예종 교수인 박광수 감독과 이현승 감독 등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다는 평을 듣던 감독들이 강사였다. 그 아래서 배우며 졸업작품으로 단편영화 하나를 처음 만들었다.
“한 편을 만들고 나니까 내 영화를 사람들에게 너무 보여주고 싶었어요. 남들은 보여주기 싫어서 감추는데.(웃음). 그래서 학교에서 단편영화제를 기획하게 됐어요. 총학생회에서 예산을 받았는데, 제 것만 상영할 수는 없으니까 당시에 유명했던 다른 단편들을 골랐어요. 그 때 만난 인연이 지금의 제 영화인생이긴 한데, 곽경택 감독님이 제 사수거든요. 제 사수이면서 <암수살인>의 제작자이시고. 그 분이 당시 만든 단편으로 <영창이야기>라는 게 있었어요. 근데 너무 재밌고, 여러 군데 상도 받았고. 제가 만든 단편하고는 천지 차이 나고, 간극이 크죠. 지금 보면 제 작품은 내놓을 수 없는 느낌인데 당시에는 무슨 자신감인지 그 작품을 학교에서 상영했어요.”
<영창이야기>는 곽 감독이 당시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오기 전 만든 졸업작품이었다. <영창이야기>의 상영을 위해 곽 감독을 접촉한 김 감독은 그 인연으로 곽 감독의 첫 장편영화 <억수탕>과 <닥터 K>의 조감독을 하게 됐고, 김성홍 감독의 <세이 예스> 조감독까지 맡게 됐다.
두 번의 데뷔 실패 후 얻은 기회, <봄, 눈>
김태균 감독이 첫 장편영화로 준비했던 작품은 <크랙>이었다. 3년 가까이 준비했던 스릴러 영화였지만 어떻게 하다보니까 잘 안 됐다. 그는 “장편이란 게 한 두 달 준비하는 게 아니다”면서 “영화를 준비하고 촬영을 시작하기까지 평균 2~3년은 걸리지만, 문제가 생겨 촬영에 못 들어가면 그 시간은 없어지는 거다”고 담담히 말했다.
그처럼 꼬인 첫 데뷔는 다음 작품까지도 계속됐다. 이후 <방각본 살인사건>이란 영화를 준비하던 그는 또 악재를 만났다. 신인 감독 전반에 대해 영화계가 불신을 가지된 일이 벌어진 것이다. “당시로서는 큰 예산이라 할 수 있는 10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인 영화인데 신인 감독이 만들게 됐죠. 근데 영화가 잘 안 됐어요. 그 화살을 제가 맞았어요. 투자자들이 ‘신인 감독에게 큰 예산을 맡기면 안 되겠구나’ 하는 어떤 불안감이 생긴 거죠. 그 감독님은 내가 아는 분도 아닌데(웃음).”
결국 김 감독은 또 영화를 엎을 수밖에 없었고, <방각본 살인사건>을 마치면 결혼하기로 했던 지금의 아내와 가정을 꾸리게 됐다. 그는 “영화감독으로 살기로 한 선택보다 더 잘한 선택이었다”며 “이후 가장으로서 더 신중한 선택을 하게 됐고 세상을 보는 눈이 평온해졌다”고 덧붙였다.
이후에도 기약 없이 계속 대본을 쓰던 김태균 감독에게 우연찮게 기회가 왔다. 평소 알던 후배였던 제작사 이사가 대본을 달라고 해 보냈더니 제작사 대표가 <봄, 눈> 대본을 마음에 들어해 5억 원 예산의 저예산 영화로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. <봄, 눈>은 10남매의 막내인 그가 돌아가신 첫째 누님을 추억하며 쓴 시나리오였다. 그렇게 2011년 11월 12일. 그의 첫 영화는 크랭크인했다.
<암수살인>, 6년만의 결과물
그렇게 <봄, 눈>이 2012년 4월 개봉하고 이후 차기작을 준비하던 2012년 후반기. 그는 우연히 한 TV 시사프로그램에서 <암수살인>을 만나게 된다. 그는 “그 프로를 원래 잘 안 보는데, 그 날은 채널을 안 돌리고 끝까지 앉아 있었다”며 “이틀 뒤 부산 영상위원회에 연락했고, 그 다음날 바로 부산에 내려갔다”고 했다. 그때부터 <암수살인>의 취재는 시작됐고, 2019년 10월 3일, 영화가 개봉됐다. 6년만의 개봉이자 상업적으로 성공한 첫 장편영화였다.
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.
<암수살인>을 준비하면서도 많은 일이 있었다. 특히 주변사람들이 계속해서 “그만 좀 해”라거나 “범인 잡혀있는데 뭐 그걸, 재밌냐. 재미없는데”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. “실제 담당 형사 분도 동료들에게 조롱을 많이 당했죠. 실적도 안 되는 걸 왜 하냐고. 근데, 그 형사 분도 ‘살인범이 살인을 했다고 하고 희생자도 있으니까 형사가 해야지’ 하면서 계속 했던 거예요. 저와 형사님의 끈기가 닮은 것 같아요(웃음).”
강의 말미에 김 감독은 “20년이 정말 필름처럼 지나갔다”고 자신의 영화 인생을 돌아봤다. 영화제작을 업(業)으로 생각한 뒤에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감독이 되기까지 걸린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. 그 기간을 버틸 정도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는 수강생들의 질문에 그는 자신이 영화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.
“일단 저는 다른 걸 잘할 자신이 없었어요. 제가 수강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,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거예요. 제가 잘나서 영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포기를 안 해서 영화를 하고 있는 거죠. 한겨레 영화제작 학교 3기 동기들은 다들 영화를 굉장히 잘 만들었는데 지금 일선에는 저 혼자 있어요. 그들은 다른 재주들이 많았어요. 나무꾼들이 좋은 나무들을 먼저 베어가고 굴곡이 심한 나무들만 산을 지키는 거죠. 재능보다는 끈기, 포기하지 않는 그런 절실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.”
영화 작업이란 게 제작자나 투자자 또는 배우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를 감수하면 언젠가는 선택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이 그가 수강생들에게 한 조언이었다. 그는 또 “영화 쪽이 굉장히 열려있다. 능력 있고 좋은 이야기를 써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”며 “플랫폼도 많아졌다. 본인만 열심히 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더 많은 기회가 올수도 있다”고 덧붙였다.
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‘도전’이라는 단어를 몇 번 되풀이했다. 영화 작업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므로 한 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. 저예산 모바일 영화처럼 당장 도전해볼 만한 방식도 제시했다. “그렇게 할 때 새로운 언어가 나온다”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.

글 박성환 <김창석 기자의 언론사입사준비 아카데미 120기> 수료생
사진 조재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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